공지사항

사순절 묵상집
2020-03-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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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부된 PDF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사순절을 맞이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지만, 특별히 교회의 전통 안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절기로 정하여 지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의 생명의 승리로 가득 찬 영광의 순간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놀라운 영광의 날을 더 깊이 묵상하고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을 정하여 지킵니다. 부활절을 맞이하기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으로, 우리는 이를 사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사순절 기간을 보내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은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아내기까지 순종하시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동참함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게 될 것(롬 6:8-9)을 믿음으로 취한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고난을 기념하기 위해 스스로 회개와 절제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에 우리가 그동안 좋아하고 즐기던 것들을 잠시 내려 놓고, 말씀과 기도, 절제와 (가능하신 분들은) 금식으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고난에 동참해 보시면 어떨까요?   우리가 사순절 기간 동안 고난에 동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따르면, 우리는 죄인이요, 아무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셔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고, 그 생명의 값으로 죄인인 우리를 사셨습니다. 이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첫걸음입니다.   더불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은혜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혜를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 함께 누림으로 우리는 사순절을 더욱 풍요롭게 보낼 수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을 보내며, 믿음의 기초를 돌아보는 귀한 영적 성장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새로운 사순절의 기간을 보내시기를 소망합니다. 3월 9일-사순절 11일째 <잘 갈등하는 법>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골로새서 3장 13절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공동체를 소개하는 어느 책의 부제가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합니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   딱 우리사는 모습입니다. 남과 함께 사는 것은 한편으로는 즐거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단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른 생각과 성향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다보면 갈등을 겪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상처도 입습니다.   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도 다툼이 있었고, 초대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갈등이 싫어 공동체를 피하거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바닷가의 자갈들을 떠올려 봅시다. 지금은 둥글둥글한 자갈들도 처음에는 모나고 울퉁불퉁했을 것입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달과 바람과 바다가 보내준 파도에 무수히 서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지금의 반질반질한 모습이 된 것입니다.   갈등을 피할 수 없다면 잘 갈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갈등할 때마다 서로 상하게 한다면 누구라도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로서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한다면, 우리도 바닷가 자갈들처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존재로 성숙하게 되지 않을까요? 기도 1. 부산진교회라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우리 교회 안에 갈등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며 격려하는 믿음의 교회 되기를 원합니다. 3.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서로를 향한 더 큰 불신과 갈등이 생겨나지 않도록 이 나라와 사회를 보호해 주시길 원합니다. 3월 10일 - 사순절 12일째 <경쟁, 독점에서 상생, 공유로>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예레미야 22장 14-16절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무한한 경쟁이 인간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환상이 깨져 이제는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무한 경쟁과 독점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최근 KF94 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는 품절 대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마스크를 대량구매하여 감추어 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싼 값에 팔려고 하다가 정부에서 물량 조절을 한다고 하니, 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판매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경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교육에 반하는 원리라고 말했습니다. ‘상생’의 ‘상(相)’에 본래 ‘자세히 보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음을 기억하여 ‘경쟁’과 ‘독점’에서 ‘상생’과 ‘공유’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에서 서로를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경쟁의 대상에서 상생의 친구로, 밟고 밟히는 관계에서 존중과 공유의 관계로 나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대하며 지켜보고 계십니다. 기도 1.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에 감사드립니다. 2. 하나님께서 기대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드려,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는 믿음의 삶을 살아내게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3.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의 좋은 정책과 이웃들을 향한 선한 마음으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3월 11일 - 사순절 13일째 <차이를 품는 일치> 찬송가 635장 “하늘에 계신(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 9-10절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만나서 신구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를 할 때는 여러 면에서 서로에 대해 많이 배려합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순서가 되면 사회자는 친절하게 안내해 줍니다.   “각자 교회에서 쓰는 주기도문을 암송하시면 됩니다.”   나직한 소리로 다양하게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그 소리가 참 좋습니다. 자신의 신앙고백을 바치면서도 옆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으려고 소리를 줄이는 배려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있어도 그것이 서로를 방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일치는 다양함을 담고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기도 1. 마음과 생각, 행동이 서로 다른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우리 삶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배려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3. 우리나라 안에 획일화된 일치가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여 하나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월 12일 - 사순절 14일째 <서로 관용과 자비를 베풀어라> 찬송가 212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스가랴 7장 8-14절 8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4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관용”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불완전하고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관용의 기본정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사람들은 등을 돌려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았고”, 주님은 더이상 우리가 “부르짖어도 듣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황폐한 땅으로 만들지 관용의 사회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지 주님께서 스가랴에게 하신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기도 1.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우리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 우리 안에 잃어버린 인애와 긍휼, 공의와 사랑을 회복하게 하셔서 이 땅을 아름다운 땅으로 만들어 가는 은혜 베푸시기를 기도합니다. 3. 점점 각박해져가는 이 나라와 사회의 사람들이 이 땅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3월 13일 - 사순절 15일째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골로새서 3장 9(하반절)-10절 9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민국가인 미국은 다문화사회입니다. 약 3년 전부터 DNA 여정(the DNA journey)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검사를 통해 자신의 외모에 감춰진 이야기에 경악하는 동시에 자신의 편견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홍보물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67명의 참가자가 나옵니다. 이들은 검사 전 다른민족이나 다른나라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구술하는데 대부분 어떤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장면은 쿠르드 여성 엘라하(Ellaha)의 이야기입니다. 쿠르드족인 그녀는 이란, 특별히 터키 정부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쿠르드인들을 속이고 힘겹게 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DNA 검사를 받아든 날 그녀는 자신의 DNA 중 79%가 이란인과 터키인과 일치함을 알고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녀와 사촌사이라고 99.6% 확실할 수 있는 태어나서 처음 만난 터키인 와쉬도 있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놀라움이 교차하는 중에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자신이 속한 다양한 뿌리를 알게 된다면 극단주의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DNA 검사를 통하지 않고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이 없다”는 야고보의 말을 기억합니다. 얼굴색이나 문화 등이 달라도 누군가를 향한 연민과 살필 줄 아는 예수님 닮은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1.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향해 차별하지 않으심에 감사드립니다. 2.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시고, 그동안 복음 전하기를 망설이고 있던 가족, 친구, 동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용기와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월 14일 - 사순절 16일째 <십계명과 부모 공경> 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 출애굽기 20장 12절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초월적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십계명에 “부모를 공경하여라”라는 인간적 계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있지만, 자녀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없는 것에 놀라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왜 일까요? 부모의 자녀 사랑은 ‘도덕적 의무’라기보다는 거의 ‘자연적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 계명이 따로 필요없기 때문일 것 입니다. 누가 강요하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부모는 본능적 사랑으로 자식을 낳고 돌보고 기릅니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고 부모에게 무심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랍비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한 부모는 열 두 자녀를 기를 수 있지만, 열 두 자녀는 한 부모를 모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고통의 시대에도 어미새가 날개 밑에 아기새를 품어 기르듯 희생과 헌신으로 자녀를 돌보며 길러 온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자녀의 ‘본능’은 아니어도 최소한 자녀의 ‘본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 1.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부모 된 본분과 자녀 된 본분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을 아름다운 곳으로 세워가는 가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3. 코로나19 상황으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의 삶의 자리를 지켜주시고, 또한 그들을 돌아보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3월 16일 - 사순절 17일째 <원수를 사랑하라> 찬송가 299장 “하나님 사랑은” 마태복음 5장 43-45(전반절)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원수 사랑’의 이상은 아름답고 고상합니다. 하지만 이상이 너무 크고 높으면 현실과 더 큰 괴리가 생깁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는데 실제로 필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이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원수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시인 월리엄 워즈워스는 “적의 내밀한 역사를 이해하면 적을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원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무지 때문에 타인을 경계하며 의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불운하고 불행한 삶의 조건과 환경에서 살다 보면 우리의 원수처럼 모질고 사나운 존재가 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여전히 원수를 사랑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무작정 원수를 미워할 수는 없게 됩니다.   미움을 버리는 순간 원수는 더 이상 원수가 아니게 됩니다. 적의 내밀한 역사, 원수의 살아온 이야기를 귀 기울여 경청하고 이해하는 것은 원수 사랑의 시작이며 기본입니다. 기도 1. 참 사랑이신 하나님의 자녀 됨에 감사드립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본받아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미워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 코로나19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우리나라와 세계 각 나라들을 지켜주시고 어서 속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3월 17일 - 사순절 18일째 <있는 그대로 보기>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누가복음 15장 2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예수님은 자주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묘사됩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이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교에서 따돌림 받는 친구를 돕다가 같이 따돌림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을 죄인과 의인으로 구분하여 보는 그들과 달리 예수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셨기 때문에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별, 외모, 출신, 직업, 종교, 취향 등으로 어떤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겉은 후패하나 속은 새로워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입니다. 하나님처럼 중심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1.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여 주시는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2.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도록 영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 코로나19로 인해 상한 마음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과 긍휼의 예수님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3월 18일 - 사순절 19일째 <주님의 이름으로> 찬송가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누가복음 9장 49-50절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는 일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런 이적을 행하는 이들을 보고, 우리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섰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썩 좋지 않은 기분을 갖을 수 있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를 다 따르는 사람들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거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그리스도의 일군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실은 우리를 위하는 자, 한 몸된 지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1. 아름다운 공동체를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삶의 현장으로 함께 이루어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나와 다른 은사를 갖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부정적인     마음과 불편해 하는 일들은 없었는지 뒤돌아보고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기도합니다. 3. 이 어려움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월 19일 - 사순절 20일째 <사랑이 없으면>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고린도전서 13장 1-3절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찬가’라는 애칭을 갖고 있을 정도로 사랑의 의미를 시적이면서도 심오하게 조명해 줍니다. 하지만 같은 본문에서 우리는 인간은 사랑 없이도 고귀하고 영적이고 윤리적으로 보이는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정신이 퍼뜩 듭니다. 우리는 사랑 없이도 천사의 말을 할 수 있고, 사랑 없이도 예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없이도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사랑 없이도 자선을 베풀 있습니다. 사랑 없이도 우리의 전 재산을 이웃에게 줄 수 있고 심지어 우리 몸마저 내어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두는 외적으로는 세상의 칭송을 받을만한 고귀한 선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인간의 모든 선한 마음과 태도와 언행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무익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타적으로 보이는 우리의 행위에 속으로는 이기적인 자아가 달라붙어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묻고 경계해야 합니다. 기도 1.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 그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하나님의 참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함을 알게 하시고 교만한 삶이 아니라 늘 겸손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합니다. 3. 나라와 민족을 위해 믿는 자들이 먼저 앞장서서 겸손한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고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요. 3월 20일 - 사순절 21일째 <참된 안식>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마태복음 12장 7절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나님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십니다. 안식일은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날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비를 주시려고 만든 날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의 안식일 준수는 그날의 자비를 거두고 무거운 짐만 지웠습니다. 자비를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 안에 있는 제자들이 그 안식일을 가장 잘 누리고 있었듯이, 주님의 구속 은총으로 참된 해방과 샬롬을 얻은 우리가 진정한 쉼과 자비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공간의 종교라기보다는 시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현현하셨던 장소까지도 거룩하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거룩하다고 말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현현하시는 그 시간의 그곳입니다, 특정한 시간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창조를 기억하도록 안식일을 제정하셨고, 특장한 날을 정해 기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들이지만 그것은 결코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에도 지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모든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믿고 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모이며 그리고 장차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될 영원한 안식을 기대하며 주일마다 모여 예배하는 것입니다.   기도 1.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쉼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2.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 안식의 참 의미를 알고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우리나라와 온 나라들이 주님이 주시는 여호와 샬롬의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월 21일 - 사순절 22일째 <우리에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사도행전 27장 43절 - 28장 2절 27: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28: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사도 바울이 탄 배가 난파하기 직전, 병사들은 배에 탄 죄인들을 죽이려는 계획을 짰습니다. 공권력이 상황을 제어하기 힘든 경우, 기결이든 미결이든 죄수를 죽이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바울은 거친 풍랑에, 또 잔혹한 제도에 의해 죽임에 처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할 마음으로 자기의 권한 내에서 모종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또, 몰타섬 사람들은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안식을 제공합니다.   테이비드 테이어스 1세가 그린 “몰타에서 바울의 기적”이란 그림은 마치 두 개의 작품을 겹쳐 놓은 느낌을 줍니다. 한쪽은 바울이 뱀에 물리는 장면이, 한쪽은 마을 사람이 베푸는 환대의 장면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의 기적에 초점을 맞추어 오랫동안 열광했지만, 이 그림은 바울의 삶에 숨어 있는 많은 도움과 친절이 위대한 기록의 힘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기적과 일상의 기적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인류는 과거에 비해 많은 힘을 갖게 됐지만, 따듯한 인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능력은 상실하고 있습니다. 친절은 인간을 편히 숨 쉬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기도 1. 은혜의 성령님! 우리의 삶을 늘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2.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따르는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3. 코로나19로 각 분야에서 밤낮으로 섬기는 이들을 위로하시고 위정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모든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월 23일 - 사순절 23일째 <성경의 활용> 찬송가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누가복음 4:9-11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서양 공포영화를 보면 가끔 신부나 목사가 악마에게 성경을 들이대며 물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문자 그대로 ‘거룩한 경전’인 성경의 능력에 대한 대중적인 믿음을 반영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정작 성경에는 마귀가 성경을 자유롭게,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보라는 마귀의 유혹을 예수님이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 그러자 영악한 마귀는 똑같이 “기록되었으되” 이라는 단서를 붙여 여수님을 다시 유혹합니다. 마귀도 성경을 읽고 자신의 악한 목적을 위해 성경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손에 들려 있다고 해서, 성경 말씀을 줄줄 외운다고 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모두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나는 성경을 내게 필요한 내용만 앞세워서 자의로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목적을 위하여 성경을 이용한다면 마귀가 하는 행동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말씀의 해석과 적용과 목적이 하나님 중심일 때만 성경을 바르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기도 1. 오늘 내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성경을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읽고 적용하게 하소서. 3. 오늘날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며 진리를 올바로 세워가기를 원합니다. 3월 24일 - 사순절 24일째 <진실의 힘>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요한복음 1:4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거짓은 지구 반 바퀴를 돈다”   어느 책에 언급된 내용인데, 거짓의 파급력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어떤 진실은 하루만에도 얼굴을 드러내지만 어떤 진실은 제 모습을 드러내는데 천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사라지고 없는 시대의 진실은 어디에서 보상 받아야 할지 억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주인 잃은 진실 혹은 때늦은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이라는 것은 거짓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은 갈수록 힘을 잃지만 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합니다. 회색 구름이 짙게 우리의 머리위에 깔려도 햇빛은 끝까지 온 천하를 비추고 있습니다. 회색 구름은 지나가지만 햇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서 땅의 모든 생명을 소생시킵니다.   세상의 많은 이단과 거짓의 영이 사람들을 미혹하지만 그것들은 이내 사라지는 거짓이며 회색 구름이입니다.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우리의 빛이 되시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 1.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이단과 거짓의 영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시고 믿음위에 굳게 서서 진리는 전파하게 하소서. 3. 코로나19와 관련된 가짜뉴스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게 하소서. 3월 25일 - 사순절 25일째 <악을 이기는 법>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로마서 12:21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의 승리는 선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 최종적 승리는 악으로 선을 물들여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선이 악을 닮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악의 승리를 역사 속에서 안타깝고 고통스럽게 목격해 왔습니다. 어제의 선이 오늘의 악이 되고, 과거의 피해자가 현재의 가해자가 되는 비극이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처럼 잔인하고 교활한 악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악에게 달려들어 악과 똑같이 싸우는 것이 이기는 방법일까요? 무력으로 악을 무릎 꿇려 선의 승리를 선포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의 승리일 뿐입니다. 악을 이기는 가장 좋은 길, 유일한 길은 어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작은 촛불이 되어 빛을 내는 것입니다. 기도 1. 말씀을 통해 악을 이기는 올바른 방법을 알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반드시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 3. 다음세대가 신앙으로 바로 세워져서 밝은 미래를 꿈꾸는 우리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소서. 3월 26일 - 사순절 26일째 <서로를 지켜주는 힘>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창세기 4:8-9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첫 살인자, 그것도 제 아우를 죽인 가인의 항변입니다. 영어에 “raising Cain”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가인을 끌어올린다는 말로 ‘큰 소동, 분란을 일으킨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신약에서도 탕자의 형은 성실하고 헌신적이지만 바람직한 모습으로 그려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많은 부분의 무거운 책임감이 주어집니다. 장자라서 부과되는 고생이 있는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하니 분노합니다. 그래서 ‘형’들의 불만과 빈정거림이 이해되고 안쓰럽습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인은 모두 장자입니다. 첫째가 되어야 살아남고, 살아남기 위해 경쟁자를 제압합니다. 누군가 쓰러짐을 보면 나도 그럴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며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눈감아 버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지 않으면 ‘나’도, ‘우리’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장자가 되려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많이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면 그럴 수 없습니다. 타인을 향한 친절과 환대, 사랑과 용납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를 지켜주는 힘, 그 힘의 시작점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기도 1.  서로 지켜주고 격하는 가족과 교회 공동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2. 경쟁하고 상대방을 짓누르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타인을 지켜주고 보듬어주는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합니다. 3. 코로나-19의 상황이 빨리 진정되고 나라와 지역 사회가 안정을 되찾게 하소서. 3월 27일 - 사순절 27일째 <가난한 이들의 기도>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누가복음 6:20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세상은 가난한 우리를 멸시하며, 실패한 인생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우리는 살면서 억울한 일을 고스란히 겪었고 많이 아프고 춥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겠습니다.   주머니가 빈 것에 집착하지 않고 심령이 가난한 자인 것을 기뻐하겠습니다.   숨거나 비겁해지는 대신에 도둑질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하겠습니다.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더불어 살기를 원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가난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소망하는 자라고 불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가난을 해결하라고 요청하는데,   정작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누구의 이웃이냐고 물으십니다.   주님, 힘들고 아파하는 이들의 편에 서겠습니다.   가난한 우리를 가난한 우리가 서로 돕겠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배우고, 우리의 행실에 공감한다면,   그 때 세상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돌아섰다고 기뻐하겠습니다. 기도 1.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가진, 가장 큰 것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2. 힘들고 소외된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천국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3.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4월 15일)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는 지도자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3월 28일 - 사순절 28일째 <서로 용서하기를...> 찬송가 453장 “예수 더 알기 원하네” 에베소서 4:31-32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과 배척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배신한 제자와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든이들까지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 곳곳에는 서로 분쟁과 시기와 다툼이 팽배해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물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 이웃을 향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말했지만 다른 이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 용서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은 알고 있지만 용서를 실천에 옮기기를 싫어했던 우리들의 행동을 돌아봅시다.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마음과 행동을 맞추어 나갑시다. 예수님이 가신 사랑의 길(고난의 길)을 따라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시간으로 만들어갑시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기도 1. 나를 용납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자가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3. 타인을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을 배려하는 우리가정과 교회가 되게 하소서. 3월 30일 - 사순절 29일째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찬송가 372장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에베소서 6장 18절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고통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는 것이지만, 그 고통 (pain)을 특별한 괴로움(suffering)으로 만드는 것은 ‘외로움’입니다. 고동을 겪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힘든데, 게다가 그것을 홀로 겪어야 하니 괴로운 것입니다. 그 괴로움이 극에 이르면 견디다 못해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반면, 함께 울고 함께 아파하는 친구와 이웃이 있다면,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 홀로 고통’은 견디기 어렵지만 ‘더불어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고통을 나누는 길 중 하나가 중보기도입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이 아름다운 노래처럼, 고통 속에 홀로 던져져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문득 자신을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고통 속에서도 감사와 희망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자기를 위해 기도할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파하고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이웃을 위해 마음 다해 기도하며 간구해 보면 어떨까요? 기도 1.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 부산진교회 공동체 내에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성도에게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하시고,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3. 이 나라 가운데 외로움에 고통 받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희망을 찾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3월 31일 - 사순절 30일째 <나를 넘어서는 사랑>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마태복음 5장 46절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때 희랍정교회 주교가 나섰습니다. 지금 봐서는 남북통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38선이 문제겠습니까?' 그리고는 미국교회 목사가 성찬 집례 자로 나서며 화해와 평화의 인사를 나누라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악수하는 정도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어요. 우리보다 북쪽 사람들이 더 울었던 것 같아요. 그 순간 마음이 하나가 된 겁니다.” 1986년 '글리온 회의'의 마지막 풍경입니다. 분단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교회 대표들이 제3지대인 스위스 글리온에서 대화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자리는 어색함과 착잡함으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항상 마지막 순간을 기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문은 스스로 열어야 하는 문입니다. 어떤 무기로도 깰 수 없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 열어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열고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감옥에 갇혀 내가 있는 곳이 내가 만든 감옥이었는지도 모른 체 나 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가 가장 큰 감옥입니다.   제 집 문턱을 넘지 않고 더 큰 세상과 마주할 수 없듯이, 집단의식의 옹졸함과 편협함을 넘어서지 않고는 경계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평화의 나라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 사회와도 조우할 수 없겠지요. 나를 넘어서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기도 1.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넘어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용납하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2. ‘나’를 넘어서지 못한 사랑을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용납하신 하나님의 ‘나’를 넘어서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3. 우리나라의 지역 이기주의와 정치이념으로 나누어져 있는 벽들을 허물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는 나라가 되게 하소서. 4월 1일 - 사순절 31일째 <다른 음의 어울림>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에베소서 5장 19절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시대가 달라도 언제 어디서나 노래가 들립니다. 기쁠 때도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며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선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목소리, 모든 음이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노래가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노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각기 높이가 다른 음들의 어울림, 곧 화음(harmony)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울림'은 '다름'을 전제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음이 똑같이 하나뿐인 노래가 있다면 어떨까요? 노래라기보다는 지루한 다음의 연속이거나 거슬리는 소음일 뿐이겠지요. 화음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다른 음, 다양한 음입니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생각 방식, 다른 생활 방식은 삶의 노래를 더 깊고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다른 음을 경청하고 존중하며 화음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선물, 우리의 찬송입니다. 기도 1. 날마다 찬송의 제목의 주시는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2.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용납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부산진교회가 되게 하소서. 3. 삶의 방식이 다름은 인정하되, 삶의 방식과 신앙의 방식이 혼돈되지 않도록 하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되는 우리나라가 되게 하소서. 4월 2일 - 사순절 32일째 <율법을 뛰어넘은 자비의 법칙> 찬송가 308장 “내 평생 살아온 길” 마태복음 20장 16절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성경 곳곳에 기존 질서를 뒤집는 전복과 반전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포도원의 품꾼 비유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한 일꾼들은 마지막 한 시간을 남겨두고 투입된 일꾼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게 되자 주인에게 불평합니다. 예수께서는 주인의 입을 빌려 이들의 ‘자비 잃은 공평’을 날카롭게 꼬집으십니다.   “나는 그대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요. 그대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요.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대 눈에 거슬리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의는 불가능합니다. 공평의 잣대를 들이댈수록 정의에 대한 갈망만 왜곡될 뿐이지요. 공평은 하나의 잣대나 일관된 성과주의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공평의 1계명은 자비의 법칙입니다. 어거스틴은 말합니다. “성서는 자비 외에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탐욕 외에는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습니다.”   생명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하늘의 마음과 따뜻한 시선이 담기지 않은 공평은 허상일 뿐입니다. 뒤틀린 근본을 바로 잡는 것이 모두를 위한 가장 큰 자비입니다.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 3:5~6) 기도 1. 우리를 율법으로 심판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2. 나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를 비판하고 평가했던 죄를 용서하시고, 내가 먼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3. 욕심과 이기심이 바탕이 된 이 세대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여 구원받게 하소서. 4월 3일 - 사순절 33일째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는 기도>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시편 12장 1절~2절 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2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어릴 적 교회 다닐 때부터 교회 어른들이 나라의 ‘위정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위정자라는 말이 생소했지만,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야 하는 거로 생각했고, 시편 72편 또한 그렇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주권자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자리 잡고, 세상을 영적인 시각이 아닌 육체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에 대한 판단을 인간으로부터 기준을 삼습니다. 인간이 중심된 ‘인본주의’의 시대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백성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경의 시각,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판단력, 성경 말씀을 통한 정의와 공의의 시각을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대한민국과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하루가 됩시다.   기도 1.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 하나님보다 인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우리의 신앙을 용서해주시고, 나의 편함과 안락함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3. 이 세상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회복되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소서. 4월 4일 - 사순절 34일째 <정체성(identity)과 포용력>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빌립보서 3절 20절~21절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빌립보서의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이야기합니다. 이 정체성의 유무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과 내용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는 희생의 삶을 끝까지 살아가셨습니다. 또한, 완전한 포용력으로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미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죄악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잃지 않으셨으며, 완전한 포용력으로 죄인 된 인간을 품으셨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은 어떻습니까? 또한, 예수님을 닮은 포용력으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며 품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포용력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순절 기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포용력의 회복을 위하여 회개하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1.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2. 부산진교회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시며, 주님을 닮아 서로를 받아들이는 포용력 있는 신앙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3. 이 시대의 교회들이 바른 정체성을 회복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땅을 품고 기도하는 눈물이 회복되게 하소서. 4월 6일 - 고난주일 월요일 <예수님의 평화가 필요합니다>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누가복음 19장 35-38절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립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은 겸손하게 모양새 없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갑니다.   평화도 이와 같이 우리 가운데 들어옵니다. 그러나 평화는 그렇게 다가와 살해 되고 파괴됩니다. 평화는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 힘써 보살펴야 하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은 전투의 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해 주신 평화는 사람의 덕목이나 인격수양으로 드러내는 무엇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는 평화를 뺏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평화를 누리는 자는 평화를 발견하고 보살피며 평화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기도 1. 우리의 인격이나 도덕적 수양과 상관없이, 우리에게 참 된 하나님의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 우리가정과 직장/학교에서 참 된 하나님의 평화를 만들고, 이를 지켜나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 코로나19 뿐 아니라 욕심과 무절제로 인해 깨어진 이 땅의 평화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온전히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4월 7일 - 고난주일 화요일 <낯설고도 차가운> 찬송가 563장 “예수 사랑하심을” 이사야 42장 1-4절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찬 바닥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이 땅에 왔지만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탈북민들이 그렇고,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금의환향할 것을 기대하면 왔지만 사기계약과 임금체불로 인해 상처만 남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 같은 그들을 살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차가운 현실 앞에 얼어버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피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슬픔에 지치고 억압과 착취에 억눌린 이들 곁에 머무시려고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시고 우리와 같이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낯설고 차가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의 몸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배워가야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희생의 섬김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기도 1. 우리를 살피시려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기로 결정하신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2. 예수님의 희생을 묵상하며 내가 찾아가 섬겨야하는 차가움 속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월 8일 - 고난주일 수요일 <암울한 미래>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전도서 4장 1-3절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는 참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고, 그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 가운데 있는지 모릅니다. 그 중에도 떨쳐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뿌리 깊은 병과 고통으로 슬픔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혜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 한탄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죽은지 오래 된 사람들이 더 복되구나!’   이 시대에도 지혜자는 똑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지옥으로 비유하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두려움과 근심이 충만합니다. 과연, 이 땅에서 우리가 진정한 소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 땅의 유일한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있는 병자와 귀신들린 자, 미움 받던 세리와 죄인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도무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을 것 같은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소망의 빛이 되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은 소망이 되어 찾아 오십니다. 기도 1. 아무 소망 없는 우리의 참소망이 되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우리 주변에서 소망을 잃어버린 이웃을 향해 다가가 빛 되신 주님의 소망을 전하고 위로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 이 땅의 다음 세대가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4월 9일 - 고난주일 목요일 <우리의 죄를 알게 하소서> 찬송가 148장 “영화로운 주 예수의” 누가복음 23장 34절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상황에서도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심지어 조롱하기까지 하는 로마의 병사들을 향해 원망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릴 뿐이셨습니다.“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모든 상황에 순종하며 잠잠히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려는 로마 병사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서 벗어날까 하나님께 그들의 잘못을 대신하여 용서해 달라고 구하고 계십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죄는 아담 때부터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하나님께 이르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다시 연결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려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잘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모르고 계시다면, 죄를 깨닫는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모르고 저지른 죄악도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기도 1.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 2. 그동안 모르고, 잊고 있던 우리의 죄를 알게 하셔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회개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기 원합니다. 3. 이 세대에 죄를 깨닫는 은혜를 더하셔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4월 10일 - 고난주일 금요일 <고난 속에 숨겨진 사랑> 찬송가 538장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이사야 53장 4-6절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옳은 줄 알고, 우리의 뜻을 세워, 우리의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의 결과는 죄였고, 그 길에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우리의 죄와 허물 속에서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놀라운 길을 여십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셨습니다. 바로 자신이 그 모든 죄와 허물을 짊어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죄와 허물의 대가가 너무나 컸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며 온갖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로마병정들의 채찍에 살점이 찢겨져 나갔고, 누군가 뱉은 침을 맞아야 했습니다. 손과 발에는 대못이 막혔고, 머리와 허리에는 가시 면류관과 창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피와 물을 쏟아내기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바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이끌어 가시려고 예수님은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어 가셨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십니다. 기도 1. 우리를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내 죄의 댓가를 대신하여 받으시기를 기쁘게 감수하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2. 우리가 우리 죄의 무게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되기를 기도합니다. 3. 세상이 하나님이 보이신 사랑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4월 11일 - 고난주일 토요일 <부활 전 토요일입니다> 침묵과 고요의 시간 십자가는 너무나도 두렵습니다. 절망입니다. 곧 새벽이 되면 두려움은 기쁨이 절망은 희망이 됩니다. 기다리십시오. <<나라와 교회와 가정을 위한 주간기도>> ※ 매일 저녁 8시에 온 성도가 아래의 기도제목으로 합심기도시간을 갖습니다. ‣  나라를 위하여 1. 시시각각 늘어가는 코로나19 확진자의 확산속도가 줄어들고 상황이 조속히 안정되게 하소서. 2.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애쓰는 연구진들에게 지혜와 명철을 내려주셔서 빠른 시일 내에 백신 개발이 완료되어 회복의 길이 열리게 하소서. 3. 코로나19 감염자에게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셔서 온전한 회복이 있게 하시고, 감염자들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허락하소서. 4. 코로나19와 관련된 가짜뉴스들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개인위생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5. 감염자들을 검사하고 방역을 관리하는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에게 새 힘을 허락하시고 의료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소서. ‣  교회를 위하여 1. 우리교회에 허락하신 사명(삶의 현장을 하나님 나라로)을 온전히 이루어 치유와 회복, 아름다운 유산을 남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2.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3. 담임목사님과 당회, 교직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셔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게 하소서. 4. 다음세대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게 하기 위해 사랑하고 헌신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  가정을 위하여 1. 우리가정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며 돕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2. 부모들에게는 하나님을 닮은 사랑과 자녀를 존중하는 마음을 채우시고, 자녀들에게는 예수님을 닮은 순종과 부모를 존경하는 마음을 채워 주소서. 3.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선한 말로 서로를 세워주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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